법률가는 전문가로서 독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지만, 동시에 의뢰인의 입장과 현실을 이해하고 소통해야 합니다. 특히 비법조인 의뢰인과 협의할 때, 단순히 법리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더 깊은 고민과 성찰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저 자신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 법리를 설명하는 일,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비법조인 의뢰인과 협의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는, 복잡한 법적 쟁점을 어떻게 쉽게 설명하고 납득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때로는 의뢰인이 특정한 상업적 또는 정치적 입장을 염두에 두고 법률 자문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변호사로서 도출한 결론이 그들의 기대와 다르면 의견 충돌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 감정을 숨기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의뢰인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힘들게 준비한 자문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법리를 납득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이 상해 감정적으로 반응한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돌이켜보면 감정을 숨기지 못해 후회하고, 결국 의뢰인께 사과드린 기억도 있습니다.
🔍 그러나 그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의뢰인을 설득하기 위해 다시 법리를 정리하다 보면, 처음에는 놓쳤던 쟁점이나 더 나은 논리를 발견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한 사건에서는 의뢰인이 계약상대방에게 불법행위 책임을 묻고자 했고, 저는 계약서의 중재조항을 근거로 “이 분쟁은 소송이 아닌 중재 대상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의뢰인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저는 감정을 추스르며 전화를 끊고 이메일로 다시 설명드리겠다고 했습니다.
📌 [법률 포인트] 불법행위와 중재조항 적용의 쟁점
계약서에 중재조항이 포함되어 있다면, 당사자 간 분쟁은 통상적으로 중재를 통해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계약과 관련된 분쟁이더라도 불법행위(tort) 에 근거한 청구가 중재조항의 적용 대상인지 여부는 간단치 않은 문제입니다.
특히 중재조항의 문언이 “계약으로부터 또는 계약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모든 분쟁”과 같이 넓게 규정된 경우에도, 일부 국가의 판례에서는 계약 외적인 불법행위에 대해 중재대상이 아니라고 보는 입장도 존재합니다.
반대로, 중재조항의 해석을 넓게 보는 판례에서는 계약과 관련된 불법행위 청구도 중재 대상에 포함된다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중재조항의 문언과 청구의 성격, 그리고 적용되는 법률 체계에 따른 해석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막상 이메일을 쓰며 다시 법리를 정리하다 보니, 이 사안에서 불법행위 청구가 중재조항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관련 판례들과 학설이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하게 되었고, 결국 이는 나중에 유사한 쟁점이 중심이 된 두바이 대법원 사건에서도 중요한 논거가 되어 2심 패소를 뒤집을 수 있었습니다.
💡 때로는 의뢰인의 '고집'이 길을 엽니다
처음엔 승소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던 사건에서도, 끝까지 억울함을 호소하는 의뢰인의 문제의식을 함께 고민하다가 핵심적인 법리를 발견한 적도 있습니다. 상대방 변호사는 첫 기일에 자신들이 “무조건 이기는 사건”이라며 확신에 차 있었지만, 저는 끝까지 의뢰인의 이야기를 듣고 법리를 정리했고, 결국 한국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승소했습니다.
🪞 의뢰인은 나의 거울입니다
스스로 준비한 법리에 몰입하다 보면, 오히려 의뢰인의 입장을 놓치는 아집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존심을 내려놓고 의뢰인의 현실과 감정을 이해하려고 고뇌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정제된 사고와 시각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변호사는 혼자 성장하지 않습니다
결국 변호사는 혼자서 성장하는 직업이 아닙니다. 의뢰인의 현실적인 질문, 때로는 고집스러운 주장들이 저를 더 깊이 고민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전문가로 만들어줍니다.
법은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법률가는 사람을 통해 배우게 되는 것 아닐까요?